너와 비를 맞으며

DWELL NOTE 03 · CHAPTER 2

— 함께 살아간다는 것

“애가 참 순하네요.”

사람들은 우리 큰아이를 그렇게 봅니다. 조용하고, 착하고, 말썽 없는 아이.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나는 압니다.

우리 아이는 심지가 곧습니다. 한번 “이건 아니야” 하고 마음에 기준이 서면,
그대로 하는 아이예요. 섬세하고, 자기만의 선이 분명하죠.
그리고 그 선이 무너지면 — 한 시간은 기본으로 웁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에도,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울어요.

비 오던 날, 어린이집에서

며칠 전, 어린이집 부모참여 수업이 있었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죠.

아이가 친구들이랑 문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어요. 한두 번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다칠 만큼 심해지니 주변 이모들이 말렸고, 저도 말했어요.
“이제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그게 싫었나 봐요. 그 많은 부모들 앞에서, 울음이 터졌습니다.

양말 한 짝의 실랑이

겨우 데리고 나와 양말을 신기려는데, 아이가 자기 양말을 신겨 달래요. 평소엔 혼자 잘 신는 아이가.

“진정하고, 나와서 신자.” 그러니 더 웁니다. 너무 울면서 도와달라길래 신겨줬더니,
이번엔 다시 벗고 자기가 신겠다고 또 울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땐 정말이지….

안 되겠다 싶어 신발을 신기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갔어요.

“진정해야 점심 먹으러 갈 수 있어. 아니면 우린 집으로 가야 해.”
그렇게 40분. 우비를 입고 비를 다 맞으며, 아이는 울다가 겨우 진정했습니다.

우는 아이를 보며

비를 맞으며 우는 아이를 보는데, 마음이 무너졌어요.

내가… 너무 강하게 키우고 있는 걸까. 기준을 지키게 한 게 맞았을까.
그냥 안아줄걸 그랬나. 아이의 그 단단한 마음을, 내가 자꾸 꺾고 있는 건 아닐까.

정답이 없다는 건 알아요. 답이 없어도 괜찮다는 걸, 
지난 글에서 나는 이미 썼었죠.
그런데 그 질문이 이렇게 육아 앞에서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의 그 곧은 심지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는 걸.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지어진 아이라는 걸.

나는 이 아이를 완벽하게 키울 수 없어요. 정답도 몰라요.

다만 이 단단한 마음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는 것,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이 아이를 알고 있었다는 것 — 그거 하나는, 어렴풋이 붙잡습니다.

강하게 키우는 것과 곁에 있어 주는 것은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아이의 심지를 꺾으려는 건 강압이지만, 그 단단한 마음이 머물 자리를 지켜주는 건 사랑이에요. 그날 나는 너를 이기려던 게 아니라, 비를 같이 맞으며 곁에 있었던 거였죠.

내가 할 일은 그 심지를 꺾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다시 설 수 있게 지켜주는 것.

완벽한 엄마는 못 되어도 괜찮아요. 흔들리면서도 곁에 있어 주는 것. 오늘도 나는 그렇게, 한 걸음 내딛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예민하고 고집 센 아이, 훈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직히 저도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다만 요즘은 아이의 고집을 ‘꺾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지켜줘야 할 심지’로 보려고 합니다. 방법은 매일 헤매지만, 그 마음 하나는 붙잡고 있어요.

Q. 아이를 너무 강하게 키우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는요?

저도 자주 불안해요. 그런데 그 불안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아이를 사랑으로 보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완벽한 답보다, 흔들리면서도 곁에 있어 주는 것 — 저는 오늘도 그거 하나로 버팁니다.




✦ DWELL QUESTION 03

나는 너를 너무 강하게 키우고 있는 걸까?

아직 답은 모릅니다. 다만 그날 나는 너를 다그친 게 아니라 곁에 있었던 거라고, 이제는 믿어요. 그 단단한 마음도, 흔들리는 나도, 누군가의 손 안에 있다는 걸 — 어렴풋이 압니다.

Built to Dwell
Grounded in grace, built for hearts to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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